[뿌리 깊은 나무] 박노현, 2012

책상에서 2017.07.06 21:18 posted by clausT

박노현, 「텔레비전 드라마와 시민(성)」, 《서강인문논총》 35호, 2012.


1. 한병철, 부르디외, 아감벤의 논의를 종합하면 텔레비전 미디어는 사색과 성찰을 위한 시간적 이완을 허용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영상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매체이다. 신문이나 서적이 이성적인 미디어인 것에 비해 텔레비전은 자극에 대한 사유를 불가능하게 하고 시청각의 중단 없는 일방적 주입을 낳는 미디어이다. 전파의 할당과 분배의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는 에서 종종 텔레비전은 프로파간다를 위한 수단이 된다. 멀리(tele)에서 보는(vision) 것이 치명적인 이유는 텔레비전이  감시와 통제의 보수성을 은폐하면서 지배적 패러다임을 설파하는 계몽의 도구이면서도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그것을 내밀하게 독대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2. 텔레비전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주체의 양산 시스템으로 이용될 위험성이 농후하나,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텔레비전과 결합된 뉴미디어의 매체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이라는 장치를 거부할 수 없다면 그와 마주하여 '보는 법'을 고심해야 한다. 텔레비전이 각인시키고자 하는 해독의 코드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 코드로부터 탈주하는 일탈적 해독의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텔레비전 드라마는 다종다양한 콘텐츠 중에서 가장 현실과 닮아 있다. 아나운서나 기자나 MC나 성우 같은 서술자를 배치하지 않고 훔쳐보기를 통한 극적 환상을 극대화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가 영화에 비견할 만한 플롯과 인물을 동원하는 것에 비해 1990년대 이후 한국드라마는 가장 많은 시청자의 가장 보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도식적 플롯과 전형적 인물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이러한 한국 드라마의 프레임에서 공동체로서의 개인 / 대자적 시민의 표상을 발견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시민은 종종 의미심장한 은유로 등장한다. 화면 안에 기입된 시민(市民; citizen)의 은유가 시민(視民; tivizen)에 의해 발견되어야 텔레비전 드라마의 시민성은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시민(성)의 형상화는 <추적자>와 같은 직접적 돌파보다는 주로 상호텍스트적 아나크로니즘을 통한 우회적 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다모>나 <추노> 같은 역사드라마처럼 시민을 시민이라 대놓고 호명하지 않고 '백성'으로 은근슬쩍 은유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는 실제의 현실이 아니라 상상된 허구라는 장르적 변호와 지금/여기의 현재가 아니라 그때/거기라는 두 가지 안전장치를 통해 검열과 통제의 시스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5.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시청자로서 상정된 우둔한 시민(stupid tivizen)은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카메라의 프레임 안쪽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몰개성과 탈주체의 시민이다. 그러나 수퍼 시티즌과 마찬가지로 우둔한 시민 역시 이상적 모델에 불과하다. 피스크에 따르면 모든 메시지는 선호된(preferred) 의미를 갖고 있으나 일탈적 해독의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텔레비전 드라마가 환각제로 작용한다는 비판은 부분적으로만 유효하다. 일원화할 수 없는 해독자인 개별 시민과 접속하는 순간 텔레비전 드라마의 의도는 고스란히 관철되는 만큼이나 능동적으로 거부된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시민(성)은 텔레비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놀이로 세속화시켜(아감벤), 하나의 텍스트를 2~3개월 동안 천천히 바라보는 무위의 피로를 축적함으로써(한병철), 놀이적 소진을 통해 시민(視民)에서 시민(市民)으로 전화하는 민주주의의 훌륭한 도구(부르디외)가 될 ‘가능성’ 속에 현존한다." (239~240)

'책상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뿌리 깊은 나무] 박노현, 2012  (2) 2017.07.06
  1. Commented by clausT at 2017.07.06 22:33 신고

    * 참고할 만한 저서: 피에르 부르디외, 현택수 역, 『텔레비전에 대하여』, 동문선, 1998./ 조르주 아감벤, 양창렬 역, 『장치란 무엇인가』, 난장, 2010.

  2. Commented by clausT at 2017.07.06 22:34 신고

    "한편, 드라마는 항상 특정한 ‘개인’을 주역으로 내세우게 마련이다. 드라마의 역사는 영웅 오이디푸스로부터 범인(凡人) 윌리 로만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로운 주인공을 기입해왔다. 하지만 시대와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채 탄생한 수많은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강력한 의지와 관객을 끄는 매력 있는 인물, 사실성을 확보하면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이 명백한 인물”10)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물론 이들은 텍스트 속에서 다양한 계층과 계급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편의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초점화된 개인, 즉 주인공이 세계와 마주하여 겪는 갈등의 면면을 목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211)